제주에는 신화가 아주 많습니다. 무려 1만8천 신들의 내력 담이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재미있는 건 천지창조 신화는 세계적으로 흔하지 않다고 하는데 신화까지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천지와 본풀이"가 그것입니다.
천지창조 신화보다 한 단계 내려서면 제주도 탄생 신화로 '설문대 할망 설화'가 있습니다.
제주의 최초의 국가 형성과 관련해서는 설화가 전해지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삼신인(三神 人) 설화입니다. 이 설화는 제주도의 기원과 초기 사회의 형성 과정을 신화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탄생 설화는 한라산 북쪽 기슭에 있는 삼성혈에서 세 명의 신인, 즉 고을나, 양을나, 부어 나가 땅에서 솟아난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이들은 각각 고 씨, 양 씨, 부 씨의 시조로 여겨집니다.
세 신인(고을나, 양을나, 부을 나)은 삼성혈이라는 땅에서 스스로 솟아났습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들이 아니며, 땅에서 태어난 존재로서 제주의 자연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어느 날, 동해에서 붉은색 상자 세 개가 떠내려왔습니다. 상자 안에는 벼의 씨앗, 가축과 함께 벽랑국(가상의 나라로 알고 있는데 일본국이라도 합니다)에서 온 세 명의 공주가 있었습니다. 삼신임은 이 공주들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이들과 함께 농업과 목축을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제주도의 농경 문화가 시작되었으며, 제주의 첫 사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세 신인은 각각 자신들의 씨족을 형성하고, 농경과 목축을 발전시켰으며, 그 후 제주도를 번성하게 했습니다. 이들이 바로 고 씨, 양 씨, 부 씨이며, 이에 따라 제주도의 사회가 발전하고 번영하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고려사]에 실린 '삼성 신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 탐라 현은 전라도 남쪽 바다에 있으며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태초에 사람이 없더니 3신인(神人)지 땅에서 솟아났다
한라산의 북녘 기슭에 구멍이 있어 모흥혈이라 하니 이곳이 3신인지 난 곳이다. 맏아들 양을나 (良乙那-후에 良은 梁으로 바뀜) 라하고, 다음을 고을나(高乙那)라고 하고, 셋째를 부을나(夫乙那)라 했다 3신임은 황량한 들판에서 사냥을 하여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았다.
하루는 자줏빛 흙으로 봉해진 나무함이 동쪽 바닷가로 떠밀려 오는 것을 보고 3신인지 다가가 이를 열었다. 그랬더니 안에는 돌함이 있고, 곁에는 붉은 띠와 자줏빛 옷을 입은 사자(使者)가 있었다. 돌함 속에는 푸른 옷을 입은 처녀 세 사람과 송아지 그리고 오곡의 씨가 있었다. 이에 사자가 "나는 벽랑국 사자입니다. 서쪽 바다에 있는 산에 신자(神子) 3인이 탄 강하시고 나라를 열고자 하나 배필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왕은 저에게 명하여 자신의 세 공주를 모시고 가라 하셨습니다. 그러한 즉 마땅히 배필을 삼아서 대업을 이루소서"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사자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사라져 버렸다.
이에 3신임은 나이 차례에 따라 순서대로 장가를 들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활쏘기로 점을 쳐서 거처할 땅을 정했다. 그 결과 양을나가 거처하는 곳을 제1도 거처하는 곳을 제2도 거처하는 곳을 제3도라고 했다. 비로소 오곡 씨앗을 뿌리고 소와 말을 기르니 날로 살림이 풍부해졌다. 」
신화 속에 등장하는 제주의 첫 인간'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권력자입니다. 이 신화는 권력 발생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주도를 창조한 거대한 여신 설문대 할망도 있습니다. 설문대 할망은 옥황상제의 셋째 딸로 덩치가 어마어마 크다고 합니다. 할망이 흙을 몇 번 날라서 만든 것이 한라산이 되고 이 흙을 나를 때 치마 사이로 흘린 흙덩어리가 오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할망이 한라산을 베개로 삼았으며 종종 서귀포 고군산에 엉덩이를 걸치고 서귀포 앞 바다 범섬에 다리를 걸쳐 물장구를 치곤 했답니다. 고군산 정상에 분화구가 패인 건 할망의 엉덩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할망이 빨래할 때면 성산 일출봉을 빨래 바구니로 삼았으며, 그 앞의 우도를 빨래판으로 썼다고 합니다. 일출봉 등산로 한 편에 보이는 겹친 기암괴석은 할망이 길쌈할 때 불을 밝혔던 등경돌이라고 합니다.
본래 본 섬과 연결되어 있던 우도가 떨어져 나가 섬이 된 것도 설문대 할망의 행동이라고 합니다. 하루는 그녀가 한쪽 다리는 오조리 식산봉에 한쪽 다리는 일출봉에 걸쳐놓고 오줌을 뉘었는데 그 오줌이 바다를 이루어 우도를 분리해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설문대 할망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옷이 한 벌뿐이라 매일 빨래하고 바느질을 해야만 했는데 그래서 제주도민에게 속옷 하나를 지어주면 육지와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약속했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설문대 할망의 속옷을 만드는데 필요한 명주 100필을 마련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도민들은 딱 한 필이 모자란 99필만을 겨우 모았다고 합니다.
설문대 할망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두 개로 나뉩니다. 먼저 한라산 물장올에 빠져 죽었다는 설이 있는데 키 자랑을 하던 어느 날 제주시에서 가장 깊다는 용연에게 가서 그 깊이를 재어 보았는데 물은 겨우 발등에 닿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더 깊다고 하는 서귀포 서홍리 홍릿물에 들어갔는데 무릎에 닿을 정도였답니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곳이 한라산 물장올인데 이 물장올은 밑이 터진 물이어서 설문대 할망이 나올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물장올은 예로부터 제주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오름입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설문대 할망이 자신의 오백 아들(오백 장군)을 위해 죽을 쑤다가 그만 솥에 빠져 죽었다는 내용입니다.
어머니의 육신을 먹게 된 아들들은 모두 슬퍼서 울다가 바위로 굳어져 현재 한라산 영실의 기암괴석 오백 장군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중 어머니가 보이지 않음을 수상히 여겼던 막내아들은 따로 차귀도 혹은 비양도에 바위로 굳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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