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역사여행

추사체

도채비꽃 2024. 9. 22. 16:09

그런데 최고의 코스만을 밟던 그가 변방인 제주에 와서 9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그랬으니 인간 자체가 바뀌었을 것입니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된 곳은 제주도 서쪽에 위치한 대정현(현재의 대정읍)입니다. 대전은 제주도에서도 바람이 가장 드세게 부는 척박한 곳이었습니다. 그 지역 포구인 모슬포는 '못살고'라고 부릅니다. 사람이 살지 못하는 포구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바람이 많이 불면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요? 제주의 칼바람을 한번 경험해 보신 분은 알 것입니다.

그럼 추사 김정희의 고통 낯선 풍습, 입에 맞지 않은 음식, 등 이 모든 것이 추사의 고독과 고통을 이겨내며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기름기를 제거 하고 멋진 추사체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대정현에서 유배 생활은 그에게 많은 어려움을 안겨주었습니다. 낯선 환경과 시선에서도 김정희는 적, 예술적 추론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척박한 토지로 적수가 거의 없는 제주도에 있으며 김정희는 자신의 지식을 위해 노력한 서예와 학문에 몰두했을 겁니다.

대전에서 그린 작품 중 하나가 *세한도(歲寒圖)*입니다. '세한도' 국보 제180호입니다..

세한도는 대전 유배지에 살고 있는 김정희가 지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그린 그림입니다. 이 괴상한 것은 불편한 겨울에 외로이 심각한 크기와 축소된 나무를 묘사한 것입니다. 김정희 자신의 외롭고 고달픈 유배 생활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대전 유배지에서 김정희는 약 9년 동안 머물렀고, 이 시기는 그에게 관심과 예술적인 부분을 더 해 주는 시간으로 평가합니다. 유배에는 종류가 있습니다. 죄의 경중에 따라 본향안치 등으로 나뉩니다. 본향안치는 죄인을 고향으로 낙향시켜 그곳에서 살게 하는 벌 벌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죠... 주군 안치는 죄인의 활동 반경을 비교적 넓게 허용해 주는 형벌입니다

중도부처는 역시 많은 배려가 있는 유배 도중 일정한 곳에 머물며 살게 하는 형벌이고 혹독한 유배형은 위리안치와 절도 안치인데 위리안치는 생활하는 집 울타리에 가시를 두르고 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하도록 한 형벌입니다. 절도 안치는 절해고도에 가두어 버리는 형별입니다. 추사가 받은 유배형은 위리안치입니다. 즉 울타리에 가시를 두르고 그 안에서만 활동을 허용했던 매우 엄한 벌입니다. 그런데 아마도 이 위리안치가 아니고 절도 안치 아닐까 합니다. 제주도라는 외딴섬에 가두어 버린 형벌... 추사의 제주에서 행적이 집 밖을 나간 기록이 있습니다. 추사기념관 뒤에 추사가 위리안치로 머물렀던 집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추사의 생활하던 집은 4.3사건 때 없어지고 현재는 안채,목거리 건물 등 다섯 채가 복원되어 있습니다. 그중 목거리가 추사가 살았던 집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추사의 제주 유배를 기념하기 위해 그가 유배 생활을 했던 집 부근에 기념관이 지어졌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인데 그 기념관 안에는 추사가 남긴 예술품 몇점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추사관 위치 :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

운영시간 : 오전 9시~오후6시 (입장 마감 오후 5시30분)

휴관일 : 매주 월요일 및 1월1일

입장료 : 무료

 

운영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방문전에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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